[국공선생의 인권이야기] 이름 하나가 가르쳐준 인권

 

 

 

 

최근 장애옹호관련기관에서 인권모니터링 면담원 교육을 받았다. 3일 동안 진행된 교육은 생각보다 훨씬 세밀했다.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 오랫동안 권익 활동을 해 온 사람들은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있었다. 교육을 받는 내내 가장 많이 떠오른 생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었다.

 

비장애인인 나는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권리의 문제였다. 경사로 하나, 안내문 하나, 회의 진행 방식 하나까지도 다시 보게 됐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교육이 끝난 뒤 작은 일이 하나 있었다. 교육장 명단에 내 이름이 '김범일'이 아닌 '김병일'로 적혀 있었다. 담당자의 단순한 실수였을 것이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굳이 문제 삼을 만큼 큰 일도 아니었다. 나 역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사실 그 불편함은 오직 나만 느끼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별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름이 잘못 적힌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고, 알았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이름의 주인은 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당사자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불편함. 당사자가 아니면 왜 그것이 문제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경험. 그래서 대부분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지나쳐 버리는 현실 말이다.

 

교육에서 만난 사례들도 그랬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계단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된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안내문이 누군가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정보가 되기도 한다. 불편함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누가 감당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생각해 보면 내 이름을 잘못 적은 사람도 나를 무시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 역시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더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내 이름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인권도 어쩌면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우리는 차별을 거창한 사건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차별과 배제는 악의보다 무관심에서 시작된다. 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불편함일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불편함을 혼자 감당하며 살아간다.

 

인권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누군가의 불편함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일이다. 나에게는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권리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개인의 문제로 남겨 두지 않고 함께 이해하고 바꾸려는 노력이다.

 

인권교육을 하면서 나는 종종 "인권교육은 내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최근에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인권교육은 단순히 타인을 이해하는 교육이 아니다. 타인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교육이다. 왜 나는 그 문제를 보지 못했는지, 왜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는지, 왜 누군가의 불편함에 무심했는지를 스스로 묻는 과정이다.

 

그날 교육장에서 틀리게 적힌 이름 하나는 결국 나에게 인권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리고 그 시선은 언제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칼럼은 장애인권 모니터링 면담원 교육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현장 성찰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칼럼니스트 소개

 

김범일 | 법정교육연구소 대표, 국공선생

 

전국 학교와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인권교육, 폭력예방교육, 청렴교육을 진행하며 사람과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작성 2026.06.02 12:38 수정 2026.06.0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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